당신이 메이커였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재호입니다. 😁 이 글은 저의 첫 메이커로그이자 자기소개이면서, 동시에 디스콰이엇을 통해 처음 접한 메이커
로서 나를 되짚어보기 위한 글입니다.[1]
스스로 좀더 솔직한 생각을 끌어내고자 독백 형식으로 작성하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당신이 메이커였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릴 적부터 나 자신에게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를 습관적으로 물었다.[2] 그리고 그 답은 항상 사람과 사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면 행복할 것 같은데..?
였다. 아마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한 건, 이 때까지는 내 대답에 대한 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글을 적으면서 돌아보니, 질문으로 끝났던 내 답이 확신을 얻기까지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메이커
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 수험생 시절: 나 자신을 위한 메이커
초등학생 시절까지의 나는 매일 문방구에서 500 ~ 1,000원 하던 로봇을, 특별한 날에는 만 원이 조금 안되는 로봇을 조립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는 그저 나에게 재미있는 것
을 만들고 동생과 함께 가지고 놀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으니 메이커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때는 나 자신만을 위한 메이커
에 그쳤던 것 같다.
이후 대학을 가기 전 수험생 시절까지 나는 전형적인 한국 수험생이었다. 공부를 하는 게 싫지 않았고 지금 이 시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면 공부 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 혹은 세상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생 시절: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메이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 4 ~ 5번의 개인 혹은 단체 사진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전시 때마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보다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
당시 동아리에서는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교 축제 사진을 찍어 사진전을 열었다. 매년 보여주는 축제의 화려함과 즐거움보다 그 다른 이면을 보여주고 싶어, 동기들에게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축제 뒷정리를 하시는 미화원분들을 찍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사진전 말미에 청소하시는 미화원분들의 사진을 전시할 수 있었다. 동기, 선후배들의 반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학생회에서 미화원분들의 사진을 교내 잡지(?)에서도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이 와서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거대한 IT 서비스는 아니지만, 작게나마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행동
자체에서 큰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 번은 대학생 4학년 막학기를 앞두고 갑작스레 휴학을 했었다.(절레절레) 졸업 후 대학원이냐, 취업이냐 혹은 장교를 다녀오느냐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명확한 이유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느니 그냥 한 번 쉬어보자는 마음으로 휴학을 했었다.
휴학 후 우연히 한 NGO 단체 포스터를 접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1세대들'. 과거 1900년대 중후반 중동 사막으로 건너가 건설현장에서 일하신 분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였다. 쉬겠다고 마음 먹어놓고 바로 신청해버렸고(?!) 약 4 ~ 5개월 동안 어르신(선생님)에 대한 인터뷰부터 수십 시간의 녹음을 따고 글로 작성하여 책 한 권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3] NGO 단체에서 진행한 만큼 제작비가 부족하여 지인분들께 나눠드릴 정도의 양만 제작할 수 있었기에 기대만큼 큰 파급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때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과 행동
이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초등학생 대상의 미술 레크레이션 동아리에 들어가 1년 동안 주말마다 아이들과 어떤 레크레이션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준비했던 경험, 일주일 동안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머물며 수험생활 노하우 그리고 대학 입시 전략을 가르쳐주는 봉사활동 등 돌이켜보면 나는 꽤나 내 기준의 메이커
로서 살아왔고 그 순간순간에서 행복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직장인 시절: 메이커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
전공을 살려 환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환경 분야 기업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앞으로 더 안좋아질 환경을 개선하고 이바지할 수 있는 업무를 한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과 출신에 자격증도 있어서 환경관리 혹은 안전관리 업무를 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신입 동기들 중 운좋게(..?) 신사업 기획/개발팀장님에게 선택되어 예상치 못한 사업 기획 및 개발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뼛속까지 이과생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기획이라는 업무는 정말 힘들었지만 동시에 유쾌한 경험이기도 했다. 기획 일을 하면서 어떻게 좀더 의미있는 사업을 건강하게 확장하고 기획하며 제안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이 내 가치관과 맞아떨어져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속한 팀은 신입도 외부 미팅이나 다양한 스타트업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을 권장하고 지원해줘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병아리 신입이 여러 스타트업 CEO님들과 미팅도 해보고 컨퍼런스에서 여러 스타트업 종사자분들을 뵙게 되면서 와... 다들 눈이 반짝이면서 일을 하시는구나. 나도 저렇게 일하고 싶다!
생각했다.[4]
현재
지금은 개발자로, 좀더 정확히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딘가 많이 생략된 뜬금없는 현재의 모습이지만 약 2년 간 기획에서 데이터 분석으로, 그리고 개발자로 커리어를 전환하면서 그 안에서 적당한 용기와 불안, 그리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 현재의 나는 사람과 사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
즉, 내가 생각하는 메이커
로서의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엔 사이드 프로젝트로 지하철 역 알림 서비스(This Station Is)
를 만들고있다. 9호선 급행을 타고 가는데, 한 어르신께서 졸고 계시다가 내리실 역을 놓쳐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고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출퇴근 때, 지하철에 앉아 졸면서도 늘 지하철 방송에 귀를 쫑끗 세우고 있던 기억이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배우고 싶었던 RN을 사용하여 천천히 만들어보고 있어서 즐겁게 만들고 있다. 추후에 디스콰이엇 메이커로그로 작성할 예정이다.
그 외에 비즈니스로 확장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2개 있는데, 좀더 내 역량이 받쳐줄 때 시작하여 성장시키고 싶다. (이 또한 메이커로그로 작성하게 되는 날이 꼭 오길..!)
[1] 나는 메이커를 사람과 사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
로 정의했다.
[2] 조금 다른 결이지만, 메타 출신 개발자 천인우님의 eo 유튜브: 본인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나요?에서 저는 사실 아직까지도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고 찾아가고 있어요.
라는 말이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다.
[3] 관련 기사: 대학생들이 1세대 중동건설 '어르신'들 자서전 쓴 이유가...
[4] 자신의 사업에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하시던 이큐브랩 CEO님과 아프리카의 교육 문제를 태양광 충전 시스템으로 해결하여 임팩트를 낸 요크 - 솔라카우 팀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